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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의 이야기
Pony2014/12/05by 현대자동차

모두가 넉넉지 않았지만, 열정이 넘쳐났던 시절. 자동차가 신기하기만 했던 그때 탄생한
한국 최초의 독자모델, 포니(Pony) 이야기입니다

포니

| 글로벌 자동차 회사의 첫걸음. 포니(Pony)



1973년 초. 현대자동차가 1967년도에 설립되고, ‘코티나’ 를 조립생산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오일쇼크와 함께 포드(Ford) 와의 공동투자계획이 무산되어버린 정말 위기의 순간이었습니다. 바로 당신, 우리의 아버지들은 가족과 나라를 위해 당신들의 한 몸 아끼지 않고 무엇이든 열심히 하던 시기였습니다. 1974년 정부는 장기 자동차공업 육성계획을 발표했습니다만 당시로써는 원천기술이 없었던 현대자동차에게는 상당한 위기였습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라는 말처럼, 우리나라 고유의 독자모델이 절실히 필요함을 느끼게 된 시점이었으며, 지금의 현대자동차가 있게 된 포니 탄생의 결정적 순간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안되면 되게 해야지. 해봤어?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의 포니(Pony)
| 1974년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의 포니(Pony)

도박 그 자체! 많은 사람이 반대했었고, 특히나 회사 내에서의 반대가 컸었던 포니의 개발을 지금 돌이켜 보면 정말 도박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자동차의 기업 정신은 바로 이런 무모할 수도 있는 과감한 ‘도전’입니다. 막대한 투자비용은 물론, 타 메이커에서의 비아냥을 뒤로 한 채 노력한 결과, 독자모델의 꿈을 이루었습니다. 아름다운 디자인과 좋은 성능의 자동차 포니를 제작하게 된 것이죠.

세기의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
 | 세기의 디자이너 조르제토 주지아로

포니 디자인은 이탈디자인(ITAL Design)의 수장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가 맡았습니다. 조르제토 주지아로는 폴크스바겐과 알파로메오, 로터스, 포드 머스탱뿐만 아니라 니콘의 F4 카메라까지 디자인을 맡았던 디자인계의 거장으로, 당시에 정말 어마어마한 돈이었던 120만 달러를 디자인료로 지불했습니다. 그 결과로 나온 포니의 간결하면서도 기하학적인 디자인은 당시 국제적인 자동차 디자인의 흐름에서 한 획을 긋는 획기적인 것이었습니다.

포니의 탄생은 국내 최초의 독자모델이라는 자존감의 상승과 함께 첫해 10,726대나 판매하며 당시 중형차가 대부분이던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무려 43%의 점유율을 기록하는 등, 소형차 시대를 열었습니다. 포니가 없었다면 우리는 아직도 외국모델을 부품상태로 들여와 국내에서 조립생산 판매하는 생산방식을 가지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포니의 연이은 대히트!
 
포니
| 대한민국 자동차의 기록

포니는 현대자동차 최초이자, 대한민국에서 최초의 독자모델이라는 기록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일본에 이어 두 번째, 전 세계적으로는 16번째로 만들어졌던 고유 자동차 모델이었습니다. 엄청난 추진력으로 개발을 시작한 지 겨우 1년만에 1974년 10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첫선을 보이고, 1975년 12월, 울산에 연간 120만대의 생산규모를 갖춘 공장을 세운 뒤 이듬해부터 본격적인 생산을 시작했습니다.

처음 포니를 접한 사람들은 해치백 스타일의 포니에 대해 다양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하지만 타사 차량 대비 뛰어난 성능과 디자인을 자랑했던 포니는 76년 7월에 한국 최초로 에콰도르로 수출하는 동시에 국내시장 점유율 60%를 기록했습니다. 

기존의 포니보다 곡선을 강조한 형태의 디자인으로 생산된 포니 2
| 기존의 포니보다 곡선을 강조한 형태의 디자인으로 생산된 포니 2

1982년에는 조금 더 동글동글하게 다듬어진 포니2가 히트를 치면서 1984년에는 캐나다로 수출하는 등, 이후 후속모델인 엑셀이 북미시장에 진출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 1990년 단종이 되는 순간까지 총 66만 1,500여 대가 판매된 기념비적인 모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앞만 보며 뛰던 시절의 포니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배짱으로 만든 포니
| 불도저 같은 추진력과 배짱으로 만든 포니

아버지들은 자식들을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왔습니다. 포니를 보면, 비슷한 느낌이 많이 듭니다. 세계 자동차 역사를 뒤져봐도 이렇게 단기간에 뛰어난 디자인과 성능의 자동차를 만든 적은 없었습니다. 포니는 아버지 세대들의 열정과 의지로 만들어진 기적 같은 차량으로, 이후 1976년도에는 포니 픽업, 1977년에는 포니 왜건, 1978년에는 배기량을 1.2ℓ에서 1.4ℓ로 높인 포니 1400, 1980년에는 쿠페 모델까지 다양한 모델을 생산하면서 많은 인기를 끌었습니다.
 
포니 픽업 모델
| 포니 픽업 모델



 Tip! 포니 디자인의 비밀

포니의 디자인 스케치
| 포니의 디자인 스케치

많은 사람들이 모르고 있지만, 포니의 디자인은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디자이너라는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손을 거쳐 탄생했습니다. 주지아로의 디자인은 직선적 느낌의 박스 형태의 구조와 선적인 느낌의 조화가 특징으로, 전체적으로 간결하면서 단순한 디자인으로 화려함보다는 기능과 실용적인 측면에서 디자인하는 것으로 유명했습니다.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 가 디자인한 포니 컨셉트카 ‘Bucrane’
| 조르제토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 가 디자인한 포니 컨셉트카 ‘Bucrane’

콘셉트카와 실제 양산되는 자동차와는 그 모습이 차이가 있지만, 전체적인 컨셉이 그대로 녹아들어 갔습니다. 실제로 포니의 콘셉트가 되었던 이 차량은 이후에 DMC사의 DMC-12으로 만들어졌습니다.

DMC - 12
| DMC - 12

어떻습니까? 포니 콘셉트카와 정말 똑같지 않습니까? 직선과 형태를 강조한 조르제토 주지아로의 디자인은 이후에 현대자동차의 엑셀, 스텔라, 프레스토, Y1 쏘나타까지 그의 손길을 거쳐 갔습니다.



쉼 없이 가족들을 위해 달려온 아버지들처럼 포니도 70~80년대 경제개발시대의 아이콘처럼 지내왔습니다. 다부진 외모처럼 뚝심 하나로 시대의 모진 풍파를 이겨낸 포니는 대한민국 최초의 독자모델이라는 타이틀과 함께, 배짱 두둑한 현대자동차 도전정신의 영원한 상징입니다.



by 한용덕(아스피린)
자동차 전문 블로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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