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시즌 마지막이자 가장 까다로웠던
WRC 13차 웨일스 랠리 Day 12014/11/20by 현대모터스포츠팀

현대 쉘 월드랠리팀이 드디어 시즌 마지막 무대에 당도했습니다. 그간의 경험이 도움된다면
2014년 시즌의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겠지만, 웨일스는 호락호락한 곳이 아닙니다

현대 쉘 랠리팀의 웨일즈 경기 참가차량의 뒷모습입니다
l 웨일스는 질척거리는 코스와 종잡을 수 없는 날씨로 인해 가장 까다로운 랠리로 손꼽힙니다



2014년 1월 의욕과 도전 정신으로 가득했던 현대 쉘 월드랠리팀은 몬테 카를로에서 데뷔 무대를 가졌습니다. 그로부터 10개월 후,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았던 2014년 시즌 대장정도 어느새 마지막 무대만을 남겨두고 있습니다. 지난 10개월간 귀중한 경험을 통해 얻었던 노하우를 마지막으로 점검해볼 수 있는 무대가 될 수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 웨일스 랠리는 완주만으로도 버겁다고 알려졌으며, 이번 시즌 13개 랠리 중 가장 혹독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곳입니다. 끝까지 도전하는 자세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앞으로 3개월 동안은 아쉬움의 한숨이 떠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차디찬 땅, 질척한 진흙탕, 언제 쏟아질지 모를 비

경기 참가차량이 i20가 진흙길을 헤쳐가고 있습니다
l 시즌 어디에도 이런 곳은 없었습니다. 오직 웨일스에서만 볼 수 있는 혹독한 조건이지요

2014년 시즌 마지막 랠리는 영국 남서부에 위치한 웨일스에서 개최됩니다. 웨일스는 우리에게 낯선 곳은 아닙니다. 박지성 선수와 함께 호흡을 맞췄던 라이언 긱스의 고향이기도 하며, 현재 기성용 선수가 있는 스완지 시티 AFC 역시 웨일스에 자리 잡고 있죠. 이곳은 전형적인 영국의 기후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가을이 되면 언제 비가 내릴지 모르며, 하늘은 늘 흐리고, 축축합니다. 엄습해오는 을씨년스러운 찬 기운은 두꺼운 외투 사이를 슬그머니 파고들죠. 웨일스는 땅이 척박하고 대부분 암석 지반인데다가 산악지형을 가지고 있어 예로부터 농사가 힘들었다고 해요. 이를 랠리식으로 해석해보면 축축한 땅에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기암괴석들, 그리고 좁은 산길을 미끄러지며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중요한 사실 한가지는 이런 환경은 시즌 중 거의 단 한 차례, 오직 웨일스에서만 펼쳐진다는 것이죠. 그래서 이전 12번의 랠리에서 얻은 경험들로 쉽게 소화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애초에 버려야 합니다. 차 밑에 붙은 진흙을 때어내는 것만으로도 미케닉들은 빠듯한 시간을 보내야 하죠. 거기에 안개의 나라답게 오전이면 거의 어김없이 안개가 드리우며 차가운 기온 탓에 비가 눈으로 바뀔 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이곳은 랠리카와 랠리 드라이버들에게 가장 좋지 않은 환경을 모두 다 가지고 있는 셈입니다.

진흙으로 뒤덮힌 차량이 코스를 질주하고 있습니다
l 한 번의 스페셜 스테이지를 소화하고 나면 차가 이렇게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변해버립니다

과장을 좀 보태자면, 안개가 심하게 끼면 드라이버들은 거의 앞을 보지 않고 달려야 할 정도입니다. 이들이 믿을 것은 오직 그들의 눈이 되어 줄 코 드라이버의 페이스 노트뿐이죠. 그 어느 때보다 코 드라이버와의 호흡이 중요하며, 세심한 페이스 노트 작성은 필수입니다. 하지만 앞차가 파놓고 지나간 진흙탕 코스는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기 때문에 조작의 정확성이 떨어진다면 마지막을 엉망으로 망칠 수도 있습니다.

티에리 누빌이 인터뷰를 하고 있습니다
l 늘 싱글벙글한 표정의 티에리 누빌은 아찔한 순간에도 평정심을 쉽게 잃지 않습니다



드라이버 라인업

이번 웨일스 랠리에는 레귤러 드라이버인 티에리 누빌과 함께 헤이든 패든이 함께 하게 됐고, 핀란드 랠리 이후 몇 달 만에 다시 돌아온 유호 한니넨이 함께 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소식은 스페인 출신으로 이번 시즌 현대 쉘 월드랠리팀과 함께 했던 다니 소르도가 2015년과 2016년에도 함께 하게 됐다는 것입니다. 드라이버의 변화가 적다는 것은 팀으로서는 몇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우선 그 드라이버와 호흡이 잘 맞았고, 드라이버가 가져다 준 성과가 마음에 들었다는 의미겠지요. 두 번째는 꾸준히 함께 하면서 다양한 경험과 노하우들을 공유하고, 특히 기술적인 부분에서 다양한 피드백을 받을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무척 긍정적인 부분이며, 장기적으로 팀을 발전시키려면 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드라이버의 조언이 필요한데, 이런 점에서 다니 소르도와 계약 연장은 현대 쉘 월드랠리팀에게도 긍정적인 면이 많을 것입니다. 

유호 한니넨의 인터뷰 모습
l 경험 많은 유호 한니넨이 오랜만에 현대 쉘 월드랠리팀에 합류했습니다

이번 랠리에 다시 돌아온 유호 한니넨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우선 몇 달 만에 다시 현대 i20 WRC에 오르게 되어 무척 기분이 좋습니다. 웨일스 랠리에서 테스트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 경험이 이번 랠리를 준비하는 데 아주 많은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제가 마지막으로 웨일스 랠리를 경험한 것은 2008년으로 당시 워낙 트랙 표면이 자주 바뀌고, 그립도 계속 변화했던 탓에 어떤 느낌이었는지는 거의 잊어버렸지만, 그래도 스테이지가 아주 빠르게 진행되며, 부드럽게 흘러갈 수 있게끔 리듬감을 최대한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드럽고 깔끔한 라인을 그리면서 스피드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죠. 그래서 전 이곳이 아주 마음에 듭니다.”

물론 당시 유호가 달렸던 곳은 지금의 코스보다 다소 북쪽이어서 코스의 특성이 다소 상이할 수는 있으나, 기본적인 부분은 거의 비슷하므로 그의 경험이 많은 도움이 될 것입니다. 헤이든은 웨일스가 뉴질랜드와 거의 흡사한 지형이고, 특히 숲 코스는 유사점이 많아 마치 고향에 돌아온 것 같다는 이야기를 남기기도 했는데, 익숙함에서 나오는 자신감이 과연 얼마나 큰 도움이 될지 기대가 됐습니다.



혹독함을 일찍부터 맛보기 시작한 첫날- Day1

진흙을 잔뜩 뒤집어쓴 차량의 모습
l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서 코스는 시시각각으로 변했고, 결국 진흙을 잔뜩 뒤집어 쓰지 않고는 제대로 달릴 수 없었습니다

첫째 날. 이른 아침부터 구름이 잔뜩 드리우기 시작했고, 결국 비가 내렸습니다. 노면은 모두 진흙탕으로 변했으며, 주먹만 한 자갈이 타이어에 의해 총알처럼 튀어 나갈 정도로 거친 노면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이런 경우 가장 까다로운 것은 타이어 그립을 확보하기 힘들다는 점입니다. 미끄러지는 일이야 감수를 해야 하겠지만 어떻게 하면 보다 부드럽게 라인을 그릴 수 있을지, 그리고 다음 코너를 위해 언제 자세를 잡아야 할지는 오직 드라이버의 감각에 달려 있습니다. 빠르게 전개되는 과정에서도 조금 더 그립을 확보할 수 있는 코스로 i20 WRC의 머리를 빠르게 돌려야 합니다.

출발 순서도 이런 환경에서는 매우 중요하지만, 아쉽게도 현대 쉘 월드랠리팀의 출발 순서는 그리 좋지 못합니다. 앞차들이 헤집고 떠난 자리를 달려야 해서 노면은 대부분이 망가진 상태였지요. 그래도 SS1은 무난히 마칠 수 있었지만, 역시나 출발 순서가 영향을 많이 미친 것일까요? 현대 쉘 월드랠리팀의 세 명의 드라이버 모두 썩 좋은 결과는 아니었습니다. 특히나 코스 전반과 후반의 노면 상태가 다르다는 점은 타이어 선택을 까다롭게 만들었고, 이는 세트업의 선택도 까다롭게 만드는 부분이었습니다. 

물웅덩이를 지나는 경기차량의 모습
l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물웅덩이는 드라이버들을 당혹스럽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제 겨우 한 개의 스페셜 스테이지를 지난 것뿐이니 아직 실망하긴 이릅니다. 이번 랠리에서 최선을 다한다면 독일 랠리에서 거둔 우승 못지 않게 시즌 전체 순위도 오를 가능성이 충분합니다. 물론 지금은 순위를 끌어 올리는 것보다 빨리 지독한 이 환경에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겠죠.

그런데 안타깝게도 SS3 하프렌 스위트 램(Hafren Sweet Lamb)에서 유호 한니넨이 둑 아래로 떨어지는 사고를 겪고 말았습니다. SS3에서 대부분의 드라이버가 그립의 불안정을 호소했고, 결국 이들이 택한 방법은 미끄러져서 코스 밖으로 이탈하는 상황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면에 고인 물을 배출하려고 파놓은 배수로에 타이어를 걸치고 코너를 도는 것이었습니다. 만화 이니셜D에서 일명 도랑타기라고 소개된 그 방법과 유사한 방법이지요.

코너에서 미끄러지고있는 차량
l 최단 코스를 찾고 미끄러지는 상황에서도 스피드를 유지하려면 때로는 배수로도 이용해야 합니다

유호도 같은 방법으로 진흙탕 길을 돌파하던 도중 다음 코너로 향하기 위해 차의 자세를 옮기는 동안 코너 반대쪽에 장애물에 걸렸고, 결국 균형을 찾지 못하고 낮은 언덕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큰 사고는 아니었지만 차는 많이 부서졌고, 게다가 언덕의 각도가 큰 탓에 스스로 회복할 수 없어 첫 번째 날 남아 있는 모든 스테이지를 포기하고 랠리2규정에 의거 둘째 날 다시 참가하기로 결정해야 했습니다. 스페셜 스테이지의 이름은 스위트 램이었지만, 적어도 유호에게는 전혀 달콤하지 않은 상황이었지요.

그의 경험이 절실한 상황에서 일어난 사고였기에 현대 쉘 월드랠리팀의 걱정은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SS4에서 헤이든은 그만 미끄러지고 말았고, 이 때문에 약간의 시간 손실을 보고 말았습니다. 첫째 날 시작부터 현대 쉘 월드랠리팀에게 아주 크나큰 시련이 닥쳐온 것이죠. 오후가 되면서 날씨가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고 햇살도 약하게나마 비추기 시작했지만, 오히려 문제는 더 커졌습니다. 해가 비추는 곳은 노면이 마르기 시작했지만 그늘진 곳은 여전히 젖어 있어서 타이어 그립이 오락가락했기 때문입니다. 

울퉁불퉁한 코스에 공중으로 띄워진 경기차량
l 헤이든 패든도 약간의 문제로 인해 이날 남은 일정을 고전해야만 했습니다

첫째 날 남아 있는 드라이버는 티에리 누빌과 헤이든 패든 뿐. 어떻게든 이 두 사람만으로 조금씩 벌어지고 있는 간격을 만회해야만 합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일이 잘 풀리지 않는 날이 있죠. 아마 이날 현대 쉘 월드랠리팀이 그랬던 모양입니다. SS4에서 스핀을 겪은 헤이든 패든의 차량에 파워 스티어링 고장이 찾아왔고, 그로 인해 원하는 조작을 즉각적으로 할 수 없는 상태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미케닉이 차량에 뭍은 진흙을 닦아내고 있는 모습
l 엄청나게 달라붙은 진흙을 빨리 제거하지 않으면 차가 무거워지죠.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의외로 주행에 미치는 영향은 큽니다

잠깐의 점심시간을 이용해 차량을 수리해야 했지만, 엄청나게 달라붙은 진흙을 때어내는 것만으로도 시간은 빠듯했고, 결국 완벽하지 못한 상태에서 오후 일정을 소화해야 했습니다. 다행히 오후에는 특별한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헤이든의 완벽하지 못한 스티어링이 그를 끝까지 괴롭혀 이날 헤이든은 종합 12위에 머무는 데 그쳐야 했습니다. 티에리 누빌은 그래도 종합 6위를 지켰지만 남은 두 드라이버가 고전한 탓에 그의 두 어깨는 더욱 무거워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첫째 날 일정을 마친 후 인터뷰에서 티에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남겼습니다.

“아직 개선의 여지도 남아 있고 여력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차량 상태였습니다. 시작부터 아주 도전적인 하루였는데, 그래도 할 수 있는 최선을 거의 다 한것 같습니다. Top3를 목표로 열심히 싸웠는데 아직 그 성과가 나오질 못했고, 특히 오후에는 미끄러운 노면과 싸워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페이스라면 마지막 날까지 우리가 목표로 했던 것은 이룰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을 위해 지금부터 엔지니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네요. 오늘은 아주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하루였습니다.”

그리고 유호 한니넨은 “첫 번째 스테이지부터 컨디션이 좋지 않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오늘의 도전은 아주 혹독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스테이지까지는 진흙탕이었음에도 페이스가 나쁘지 않았지만 아쉽게도 SS3에서 그립을 잃으면서 도랑으로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다시 복귀하기 어려워 결국 첫째 날은 리타이어를 결정해야 했는데, 오늘 밤사이에 수리를 마친다면 내일은 다시 출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내일은 부디 트러블 없이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라며 힘들었던 하루에 대한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진흙이 잔뜩 뭍은 차량하부를 정비하고 있는 미케닉의 모습
l 미케닉들도 기름때와 함께 진흙을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했습니다

아주 미끄럽고 축축한 노면을 빠르게 달려야 했던 만큼 드라이버나 차량 모두에게 많은 스트레스가 되었을 날이었습니다. 거기에 헤이든은 차량 결함까지 겪으면서 힘들어했는데, 다음날은 어쩌면 더 힘든 과제가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를 일입니다. 오늘의 쓰라린 경험을 거울삼아 조금 더 완벽한 레이스가 될 수 있도록 모두가 힘을 기울여야겠지요.



by. 마요네즈
자동차, 모터스포츠 전문 블로거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