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K리그를 호령하는 전북현대
최강희 감독과 함께한 특별한 인터뷰2015/12/14by 현대엔지니어링

화려한 공격과 끊임없는 소통으로 승승장구하는 전북현대,
그 중심에 있는 최강희 감독을 만나봤습니다

전북현대의 슈퍼스타, 최강희 감독과 함께 특별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l 전북현대의 슈퍼스타, 최강희 감독과 함께 특별한 인터뷰를 진행했습니다



축구를 좋아해서 아들 이름을 박지성 선수의 이름을 본떠 ‘지성’으로 지었다는 임지근 대리. 그가 아들의 손을 잡고 전북 완주군 봉동읍 전북현대모터스 클럽하우스를 찾았습니다. 푸근하고 넉살 좋은 ‘봉동 이장’이자, 십 년간 세 번의 K리그 우승을 쟁취한 무표정의 승부사 최강희 감독이 반가이 그들을 맞았는데요. 하늘은 푸르고 바람이 솔솔 하여 축구하기 딱 좋은 날, 두 남자는 축구에 관해 묻고 축구에 관해 답했습니다.



‘닥공’으로 관중을 공략하다

전북현대의 트레이드 마크, 화려한 공격으로 팬들을 사로잡았죠
l 전북현대의 트레이드 마크, 화려한 공격으로 팬들을 사로잡았죠

임지근 대리 저는 원래 본가가 전주인데요. 명절에 내려왔을 때 거리에 전북현대모터스(이하 전북) 유니폼을 입은 사람이 많아서 놀랐습니다. 전북이 축구의 고장으로 발돋움했다는 것을 실감했지요.

최강희 감독 2005년도에 처음 제가 부임했을 때는 평균 관중이 3천~5천 명 정도밖에 안 되었습니다. 수원 삼성의 FC서울 평균 관중이 3만 이상이었으니 우리는 서포터즈 좌석 정도만 차는 수준이었죠. 골을 넣어도 관중들이 “그려 그려, 잘혔어” 하면서 박수를 딱 세 번 치더군요. 그래서 “아, 여기는 양반의 도시고 사람들이 다 점잖아서 프로 스포츠가 뿌리내리기 어렵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관중이 즐기고 열광하고 빠져들어야 하는데 그게 아니니까요. 그런데 2009년에 팀이 첫 우승을 하면서 분위기가 변하기 시작했죠.

임지근 대리 얼마 전에는 첫 30만 관중을 돌파하기도 했고, K리그 관중 수 1위를 달리고 있는데요. 아마도 전북팀이 ‘닥공(닥치고 공격)’ 축구라는 수식이 붙을 정도로 화려한 공격력을 선보이기 때문인 것 같아요.

최강희 감독 선수 구성이 안정되면서부터 공격 성향의 축구를 지향해왔습니다. 2011년에 ‘닥공’이라는 이름이 붙여지면서 큰 반향을 일으켰고요. 지금도 저는 선수들한테 홈경기는 무조건 공격이다, 템포를 빠르게 해라, 백패스 하지 마라, 주문합니다. 승률도 승률이지만 팬들이 더 열광하고 몰입할 수 있는 경기를 선보여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임지근 대리 전북의 트레이드마크는 역시 닥공이죠. 제가 전북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고요. 항상 공격적이고 재미있는 축구를 펼쳐줄 것이라는 그런 기대감이 있어요. 승리와 팬들의 사랑을 놓치지 않겠다는 전북의 축구스타일도 느껴지고요.

최강희 감독 사실 닥공을 버릴 생각을 하기도 해요. 상황에 따라 경기에 따라 전략이 달라질 수 있지요. 닥공이라는 화려함 뒤에 팀과 선수들의 부담감도 분명 존재할 것입니다. 전북이 공격하면 상대 팀은 수비하고, 그러다 보면 체력과 경기력에 대한 소모도 클 수밖에 없지요. 박진감 넘치는 경기를 전제로 하지만, 경기력을 최고로 끌어올릴 수 있는 다양한 시도는 계속될 것입니다.



축구 선수부터 감독이 되기까지

“선수들이 실수하거나 슬럼프에 빠질 때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감독의 몫이죠”
l “선수들이 실수하거나 슬럼프에 빠질 때 옆에서 도와주는 것이 감독의 몫이죠”

임지근 대리 감독이 되시기 전에는 수비수로 활약하셨다고 들었는데요. 언제부터 축구를 시작하셨나요?

최강희 감독 어릴 때 경기도 양평에 살았습니다. 그때 제가 한 건 논에서 축구하고 만화 그리는 게 다였습니다. 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사셨는데 1, 2, 3학년 다니는 동안 제 담임을 맡으셨죠. 그러다 5학년 때 서울로 전학을 가게 됐습니다. 전학 간 학교에 마침 축구부가 새로 창단을 하더군요. 그래서 축구부에 들어갔고 6학년 때 제가 주장을 맡아 축구 대회에 나갔습니다. 논바닥에서 공 차던 가닥 덕분인지 일곱 경기에 나가 여섯 경기에서 우승했죠. 소질도 있었고 축구를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임지근 대리 부모님이 반대하진 않으셨나요? 저희 아버지도 초등학교 교사셨는데, 중학교 때 아버지 몰래 축구부에 들어갔다가 걸려서 혼쭐이 났어요.

최강희 감독 반대하셨죠. 초등학교 때는 저를 그냥 내버려두셨는데 중학교에 가니 상황이 달라졌습니다. 일단 학교에 축구부가 없었고, 위로 형님 두 분이 워낙 공부를 잘해서 저를 잡아다 공부를 시키고 그랬어요. 축구가 너무 하고 싶은데 꼼짝을 못했으니… 그때가 제 인생의 암흑기였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3학년 때 아버지 앞에 엎드리고 축구 하게 해달라고 빌었죠. 그래서 고등학교 때 다시 축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임지근 대리 선수로서 감독으로서 오랜 시간 축구를 해오셨는데요. 슬럼프는 어떻게 극복하셨나요?

최강희 감독 선수 시절엔 스스로한테, 지금은 선수들한테 말해요. “슬럼프도 사치다. 정말 애절하게 축구를 원한다면 그런 것을 겪을 이유가 없다”고요. 개인도 그렇고 팀도 그렇고 늘 기본 실력의 85~90%는 해야 합니다. 선수가 컨디션에 따라 기량을 40% 발휘했다가 120% 발휘했다가 해서는 안 되죠.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라운드 컨디션이 좋든 나쁘든 기량의 90% 이상은 항상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물론 우린 인간이기 때문에 실수도 하고 슬럼프에도 빠지지만, 이런 격차를 줄이도록 하는 게 감독 몫인 것 같습니다.



전북현대모터스의 원동력, 믿음, 신뢰 그리고 소통

전북을 열광하게 한 전북현대의 원동력은 뭘까요?
l 전북을 열광하게 한 전북현대의 원동력은 뭘까요?

임지근 대리 지금은 최고의 명장으로 팬들의 사랑을 받고 계십니다만, 한때는 팬들이 감독님을 비난하던 시기도 있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때 홈페이지에 팬들에게 편지를 남기셨죠.

최강희 감독 ‘여러분께 여러 시즌 스트레스 잔뜩 드리고 있는 최 감독입니다’로 시작된 편지였죠. 사실 성적에 대한 모든 책임과 원인은 감독인 저에게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죄한다고 말했고, 모든 비난은 달게 받겠다며 책임을 통감한다고 말씀드렸어요. 하지만 전북은 젊고 가능성 있는 팀이기에 조금만 더 애정을 갖고 지켜봐 달라고 호소했죠.

임지근 대리 그 편지를 읽고 팬들도 많이 감동했습니다. 솔직한 감독님의 속내를 이해할 수 있었고 냉랭했던 반응도 풀린 것이지요. 그래서 다시 모두가 힘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최강희 감독 꼭 편지 때문은 아니었겠지만, 후반기에 팀이 살아났어요. 팀의 위상도 계속 높아지고 경기장을 찾는 관중도 많아졌습니다. 구단의 전폭적인 지원도 이루어졌고요. “가슴에 별을 달고 축구판을 호령하는 모습을 보여주자. 우리 팬들의 영원한 숙제인 리그 우승도 꿈꿔보자” 이런 꿈들도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

임지근 대리 팀을 이끄는 수장으로서 선수들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최강희 감독 믿음, 신뢰, 소통, 그리고 대박이 아빠(이동국 선수)? (웃음) 우리 팀이 우승했을 때 기자들이 저한테 리더십이 뭐냐, 축구 철학이 뭐냐 물어보면 제가 그랬어요. “나는 하는 게 없다. 그저 선수들 앞에서 불쌍한 표정을 짓는다. 그러면 선수들이 알아서 한다.” 처음에 이동국 선수가 팀에 왔을 때는 굉장히 어려울 때라 일주일에 두세 번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축구 얘기도 하고 가족 얘기도 하고 그러면서 어려운 시절을 함께 극복했죠. 하지만 지금은 이동국 선수와 마주 앉아 얘기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니까요. 전체 팀 분위기가 그렇습니다. 이젠 서로 믿음과 신뢰가 형성되어서 제가 말하지 않아도 선수들이 알아서 합니다. 저는 그저 선수들이 ‘저 아저씨가 날 믿는구나’ 하고 느낄 정도만 하는 겁니다.



인터뷰. 건축 임지근 대리
사진. 정현석









TOP